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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하나의 불씨가 타오르는 광장이 되기까지 (작은 양심, 거짓의벽, 침묵, 양심의촛불)

by donmanymany9 2026. 8. 23.

 

영화 1987 공식 포스터 - 박 처장(김윤석), 최 검사(하정우), 한병용(유해진), 윤 기자(이희준), 연희(김태리) 등 다양한 인물들의 비장한 얼굴이 어우러진 모습
영화 1987(1987: When the Day Comes, 2017) 공식 포스터 — 거대한 국가 폭력의 시대, 보통 사람들의 정직한 양심과 불복종이 만들어낸 찬란한 광장의 역사를 다루다.

국가 폭력이라는 거대한 기계와 균열을 만드는 작은 양심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정권 유지라는 미명하에 제 눈을 가리고 국민의 목숨을 짓밟는 무자비한 기계로 변했을 때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거대한 권력의 폭력 앞에 선 개인은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에 직면하며, 대다수는 침묵하거나 눈을 감는 편을 택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거친 수레바퀴를 바꾸는 힘은 정형화된 거창한 영웅 한 두 사람의 결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하여 6월 항쟁의 뜨거운 함성으로 피어난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는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을 통해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영화적 서사로 재탄생합니다.

 

영화 <1987>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특정 인물 한 명을 절대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공수처 박 처장(김윤석 분)을 위시한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에 맞서, 시신 화장 승인을 거부하는 공안부 최 검사(하정우 분), 진실을 직시한 부검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려는 일간지 윤 기자(이희준 분), 정권의 압력 속에서도 양심을 지킨 교도관, 그리고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에서 갈등하던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체들이 릴레이 경주처럼 바통을 주고받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역사사회학적 질문은 명확합니다. 거대한 독재 체제를 무너뜨린 진짜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영화는 거대 서사의 그늘 뒤에 숨어 있던 보통 사람들의 주저함, 공포, 그리고 마침내 거부할 수 없었던 '시민적 양심'에 주목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서 있는지를 가슴 아프게 일깨웁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의 벽

영화 <1987>의 서사를 관통하는 비평적 쾌감은 국가 권력이 치밀하게 설계한 '거짓의 시나리오'에 평범한 개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소소하게 태클을 걸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파열음에 있습니다.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잔혹한 고문으로 숨지자, 대공수처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신속하게 시신을 화장하려 합니다. 그러나 당직을 서던 서울지검 최 검사는 서류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권력의 위협 앞에서도 직인을 찍어주지 않은 채 부검을 강행합니다.

 

부검 결과 상흔이 드러나자 공안 당국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국민을 기만하려 들지만, 진실의 물꼬는 이미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신을 직접 확인한 부검의의 정직한 진술,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 그리고 교도관의 위험천만한 비밀 편지 전달이 사슬처럼 이어집니다. 특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갈등하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이 어린 조카 연희에게 비밀 노트를 건네며 나지막이 내뱉는 대사는, 공포를 뚫고 나오는 평범한 이의 절박한 양심을 대변합니다.

 

"삼촌도 무서워. 죽을 만큼 무섭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잖아. 그래야 세상이 바뀌는 거잖아."

이 장면에 담긴 떨림은 단순한 영웅주의가 아닙니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공포 앞에서도 끝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었던 한 인간의 괴로움과 용기가 공존하는 순간입니다. 거대 권력이 세운 완벽한 거대 장벽은 이처럼 각자의 소명과 직업적 양심을 지킨 소시민들의 작은 불복종이 쌓여 마침내 유리가 깨지듯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한 단계 더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도 존재합니다. 영화가 선사하는 릴레이식 서사의 통쾌함 이면에는, 국가 폭력의 핵심 주동자들이 체제 개편 이후에도 완전히 단죄되지 않은 채 기득권의 그늘 속으로 은근슬쩍 스며들었다는 역사적 한계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6월 항쟁의 승리와 승리 직전의 뜨거운 감동으로 극을 마무리짓지만, 그 이후 연대했던 시민 사회가 다시 분열되고 권력이 재편되는 냉혹한 현실정치의 잔혹함은 은연중에 생략된 감이 있습니다. 찬란했던 광장의 기억 뒤에 스며든 역사적 씁쓸함을 되짚어보는 것 역시 이 영화가 남긴 중요한 비평적 과제입니다.

 

 

침묵이라는 편안함을 박차고 광장으로 나아가기까지

우리는 종종 세상의 부조리함이나 불의를 목격했을 때, "내가 나선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나 하나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지나갈 텐데"라며 스스로를 달래곤 합니다. 저 역시 수년 전, 조직 내부에서 명백히 불합리한 결정이 내려지고 누군가가 억울한 피해를 입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혹시라도 내게 불이익이 돌아올까 두려워 깊게 침묵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내 안위만을 챙기며 고개를 돌렸던 그 순간의 편리함은, 역설적이게도 오랫동안 제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는 비겁함의 굴레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모른 척 눈을 감는 것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나 자신의 존엄성을 조금씩 갉아먹는 일이었습니다. 내 눈앞의 작은 이익과 안전을 위해 침묵을 선택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시스템의 무기력한 부품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마음의 부채감 속에서 마주한 영화 <1987>의 대학생 '연희'라는 캐릭터는 제게 강렬한 자기 고백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요?"라며 시위대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일상을 지키려 애쓰던 연희의 자화상은 바로 침묵하던 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처참하게 스러져간 또 다른 청년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목격하고, 신문 1면을 장식한 비극을 접했을 때 연희가 신발이 벗겨진지도 모른 채 시위대로 달려가 버스 지붕 위로 올라가 손을 들어 올리던 그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진짜 용기란 공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공포보다 더 거대한 인간적 미안함과 양심의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 행위'라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 저는 더 이상 불의나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책임하게 고개를 돌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작지만 정직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양심의 촛불

영화의 마지막, 시청 앞 광장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운 수십만의 시민들이 목청껏 부르는 민중가요와 "독재 타도"의 함성은 화면을 넘어 관객들의 가슴속으로 뜨거운 파도처럼 밀려듭니다. 버스 지붕 위에 올라선 연희의 눈에 고인 눈물과 차가운 최루탄 연기를 뚫고

 

올라온 수많은 손사래는, 마침내 하나의 개인이 거대한 '우리'로 승화되는 역사적 기적을 증명합니다.

1987년의 광장은 먼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태도이자 일상의 이정표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거짓에 맞서 작은 양심을 지켜내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세상이 너무 차갑고 견고해 보여도 낙담하거나 무력감에 빠지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켜낸 작고 정직한 양심 한 조각이 누군가의 용기와 만날 때,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양심의 불씨를 지키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정직한 한 걸음을 내딛는 당신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KxgNQ8cjt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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