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자라는 이물질을 받아들이는 사회, 그리고 운명의 굴레를 짓밟는 자아
우리는 타인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수용하는가.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상이한 가치관과 낯선 배경을 가진 이들을 '외부의 존재', 즉 이물질로 배척하거나 제약하려 든다. 사회적 권력과 기득권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제어 가능한 굴레 속에 가두려 하고,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스템이 지정한 정체성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하곤 한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은 고려시대 도술이라는 서정적 예트와 21세기 SF라는 차가운 미학을 번갈아 직조하며, 거대한 시공간의 혼돈 속에 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타자와의 연대를 이루고 운명의 틀을 허무는가를 격정적으로 고찰한다.
인간의 뇌 속에 외계인 죄수를 감금한다는 기발한 모티브는 비단 장르적 쾌감에만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 조용히 뿌리내린 어두운 상처와 억압, 그리고 외부에서 강요된 사회적 타자성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정체성 잔혹사다.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묘한 기운을 다루는 고려 도사 무륵과,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들어와 신검을 쫓는 이안의 교차는 거대 시스템의 그물망을 뚫고 나가려는 정직한 존재론적 투쟁이다.
이 비평적 서사는 역사의 굴레와 시대의 벽을 뛰어넘어 소시민들이 어떻게 서로를 지켜내는가에 주목한다. 권력과 외계라는 압도적인 기형적 위협 앞에서도 거창한 영웅적 대의가 아닌, 서로에게 진 빚과 소박한 연민의 힘으로 버텨내는 인물들의 발자취는 획일화된 현대 문명에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신화적 장르 융합 뒤에 숨은 우연성의 서사, 그리고 구조적 아쉬움
영화가 선사하는 폭발적인 동력은 결코 섞일 수 없어 보이던 두 개의 세계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엮여 들어가는 쾌감에 있다. 죄수를 쫓는 차가운 기계적 논리의 가드와, 인간의 우발적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던 가드의 조종자 '썬더'의 관계는 기계적 냉소와 인간적 공감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탐구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도 이안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던 무륵이 멈춰 서서 내뱉는 한마디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온전히 꿰뚫는다. 무륵이 신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을 가로막는 무수한 환영들을 향해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나도 몰라. 하지만 지금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건 알아"라고 외치는 장면은, 지식이나 계산된 논리가 아닌 순간의 정직한 연민이야말로 인간을 정의하는 진짜 힘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학적 비평의 관점에서 이 거대한 시도는 명확한 한계점을 노출한다. 도술과 SF라는 파격적인 시공간의 교차가 주는 신선함 뒤에는 지나치게 우연성에 의존하는 사건 전개와 과도한 서사적 장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인물 간의 관계가 밀도 있는 내면적 개연성을 쌓아 올리기보다 사건의 스펙터클을 위해 다소 조급하게 소비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거대한 자본과 상업적 기획의 틀 안에서 사회 비판적 층위가 서사의 화려함에 눌려 다소 옅어졌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타인의 틀에 갇혔던 날들, 낯선 타자와 마주하며 터뜨린 오열의 순간
돌아보면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이 만들어놓은 정체성의 굴레 속에서 숨이 막혀가던 날들이 있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되어, 내가 원하지 않는 역할과 가면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유난스럽다'는 서늘한 평가였고, 그 억압된 시선 속에서 나는 마치 내 몸속에 낯선 외계 생명체가 들어앉아 나를 통제하는 듯한 극심한 분리감을 겪어야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낯선 시선의 인물과 뜻하지 않은 오해로 부딪혔던 적이 있다. 서로를 차가운 이물질로 여기며 날을 세우던 중, 서로가 짊어진 깊은 굴레와 외로움의 무게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타인을 향한 배척의 눈을 거두고 마침내 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았을 때, 억눌려 있던 죄책감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서럽게 오열하고 말았다.
내가 거부하려 했던 그 낯선 타자야말로 실은 나를 억압된 굴레에서 건져 올려줄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음을 깨달았던 그 밤은, 내 삶의 경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뜨거운 체험이었다.
영화 속 무륵과 이안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서로의 빚을 갚아나가듯, 낯선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은 나를 둘러싼 벽을 허물어뜨리는 강력한 열쇠가 된다. 세상이 정해놓은 획일적인 잣대에 스스로를 욱여넣기보다, 불확실한 낯선 세계로 걸어 들어가 타인의 손을 잡는 용기만이 차가운 공포를 물리치는 진짜 주체성의 시작이다.
산산조각 난 굴레를 넘어 스스로 써 내려가는 삶의 궤적
세상이 당신에게 특정한 가면을 쓰라고 명령하고, 검증된 정답만을 따르라고 압박할지라도 당신 안에 숨쉬는 고유한 의지까지 가둘 수는 없다. 고려의 도사들이 보여주는 엉뚱하지만 정직한 기지와 현 현대의 소시민들이 보여주는 숭고한 직업적 소명은, 결국 거대한 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거룩한 몸부림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없어 방황하던 인물이 타인을 향한 사랑과 연대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듯, 우리 역시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친 바람 속에서 스스로의 궤적을 완성해 나간다. 완성된 정답에 나의 삶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산산조각 난 일상 속에서도 꿋꿋하게 내 몫의 온기를 전하는 삶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숭고한 자아실현이다.
오늘 밤, 당신이라는 온전한 존재가 세상이 씌운 억압의 틀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시공간의 거친 풍랑을 뚫고 마침내 나만의 당당한 서사를 완성해갈 당신의 그 고독하지만 빛나는 여정을 깊은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X1wG3GHNW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