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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통과의례가 아닌 기억의 정치학 (웃음의 가면, 준엄한 단죄, 내면의 주체성, 인간존엄의 서사)

by donmanymany9 2026. 9. 5.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공식 포스터 - 한복을 입고 결연한 의지로 단상에 서 있는 옥분과 그녀를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지하며 곁에 서 있는 9급 공무원 민재의 모습
영화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2017) 공식 포스터 — 억압된 침묵을 깨뜨리고 무반성한 역사의 만행을 향해 당당히 외친 진실과 존엄의 기록.

 

웃음의 가면 뒤에 숨겨진 역사의 서늘한 비극과 침묵의 사회학

 

민원왕 옥분(나문희 분)의 유쾌한 일상은 결코 한 개인의 유별난 기행이나 나이 든 소시민의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 폭력과 차가운 역사적 비극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증명하는 처절한 생존의 발악이자, 사회적 무관심을 향해 던지는 소리 없는 외침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초반부 전형적인 한국형 코미디의 탈을 쓰고 우리를 해학적으로 웃게 만들지만, 그 웃음의 결 끝에는 마침내 감추어져 있던 역사의 서늘한 비극을 직면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바쁜 현대 사회의 통과의례' 정도로 치부하거나, 과거의 일일 뿐이라며 손쉽게 망각의 뒤편으로 밀쳐두려 한다. 거대 권력과 이기적인 사회적 시스템은 피해자들에게 조용히 숨죽일 것을 요구해 왔고, 개인의 존엄성은 국익이나 외교적 타협이라는 명분 아래 너무나 쉽게 유예되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아 온 피해자가 어떻게 스스로의 가해진 상처를 깨뜨리고 역사의 진정한 주체로 서는가를 신랄하면서도 숭고하게 조명한다.

 

이 비평적 칼럼은 단순한 신파나 과거에 대한 감상적 애도를 넘어선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겪어낸 지독한 소외와, 그 침묵을 깨부수고 세상 앞으로 걸어 나온 증언의 정치학에 주목한다. 또한 가해자의 몰염치한 역사 왜곡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성실한 역사의 파수꾼으로 서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자 한다.

 

 

무반성한 일본의 파렴치한 만행에 대한 준엄한 단죄

미 의회 청문회장의 묵직한 단상 위에 선 옥분이 전 세계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는 "I can speak"는 무책임한 침묵과 거짓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몰염치한 만행을 향해 날려 보낸 준엄한 역사적 단죄다. 20세기 차가운 전쟁의 광기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짓밟고 영혼까지 파괴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성노예 범죄는 인류 보편의 정의를 무자비하게 짓밟은 명백한 반인륜적 범죄다.

 

그러나 비극의 진정한 비열함은 과거의 폭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전범국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와 반성을 외면한 채, 역사를 왜곡하고 범죄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야만적인 태도는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 다른 칼날을 꽂는 차가운 2차 가해다. 진정성 있는 사죄는커녕 돈 몇 푼으로 과거를 덮으려 들거나 공공연히 증거를 인멸하려는 파렴치한 행태는 가해자의 잔혹함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해 준다. 옥분의 외침은 바로 이러한 가해자의 비열한 망각주의를 향한 서늘한 경종이다.

 

다만, 사회학적 비평의 관점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명확한 서사적 한계점 역시 노출한다. 영화 전반부의 소소한 생활 밀착형 코미디와 후반부 청문회 신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다소 급작스러워, 비극적 역사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객의 신파적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인물 간의 관계와 역사적 사건의 결합이 깊이 있는 서사적 개연성을 쌓아 올리기보다 다소 상업적 기획의 틀 안에서 정형화된 감동 포인트를 조급하게 소비했다는 점은 비평적 아쉬움으로 남는다.

 

 

억압된 상처를 터뜨린 외로운 순간, 그리고 침묵을 깨뜨린 내면의 주체성

살다 보면, 거대한 부조리와 불합리한 폭력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긴 채 차가운 침묵을 강요받는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의 벽 앞에서, 내가 겪은 아픔과 진실이 외면당하고 도리어 유난스러운 떼쓰기 정도로 치부될 때 느끼는 자괴감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나 역시 과거 거대한 조직의 부당함에 맞서려 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서늘한 냉소와 "너만 참으면 모두가 편하다"라는 이기적인 압박뿐이었던 쓸쓸한 아픔이 있다.

 

골방에 홀로 갇혀 내가 왜 이런 부조리를 참아내야 하는지 자책하며 서럽게 오열했던 그 밤의 외로움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서늘한 앙금으로 남아있다. 안위를 위해 눈을 감고 세상이 요구하는 가면을 쓰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는 유혹이 나를 흔들었다. 그러나 억눌린 슬픔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결국 타인의 동정표가 아니라, 내 안의 가짜 침묵을 깨뜨리고 나의 진실을 직접 증언하겠다는 정직한 주체성의 발현이었다.

 

영화 속 옥분이 손주 같은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의 손을 잡고 서툰 영어를 배우며 마침내 자신의 진짜 이름과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듯, 억압된 폭력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인 용기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비열한 타협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내 삶의 진실을 스스로 입증해 나가는 외침이야말로 차가운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단단한 무기가 된다.

 

 

역사의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미래를 향해 외치는 인간 존엄의 서사

역사는 결코 정치가들의 비열한 타협이나 가해자의 이기적인 망각에 의해 은폐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집요하게 범죄를 부인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려 한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불꽃같은 생존의 기록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다. 완성된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일상의 부당함에 민원을 넣듯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태왔던 소시민들의 정직한 양심이야말로 역사의 왜곡을 막아서는 든든한 방파제다.

 

우리는 더 이상 잔혹한 역사의 방관자나 무관심한 제3자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이기적인 논리로 우리를 길들이려 할지라도, 부조리한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서서 함께 외쳐주는 연대의 태도가 절실하다.

 

가해자의 무반성과 냉혹한 현실의 풍랑 속에서도 스스로의 존엄을 잃지 않았던 수많은 옥분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라. 타인이 씌운 억압의 틀을 벗어던지고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어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삶이야말로,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 나 자신의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내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승리다.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gJFpAsRP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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